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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조선 최고 사상가 정약용의 다산초당 유배생활

by 채유니후니 2023. 6. 14.

다산 정약용은 실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최고의 사상가와 개혁가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 가족 문제, 가난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길에는 꼬불꼬불하고 험한 길과 붉은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다산초당-사진
다산초당

 

조선 최고의 학자로 거듭난 유배생활 

1800년 다산을 총애하던 정조가 승하하고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다산은 천주교도로 몰려 경상도 장기현(지금 포항시 장기면)에 유배되었습니다. 그해 10월 처조카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산은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고 강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달픈 18년 귀양살이는 조선 최고의 학자로 거듭나게 한 18년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산의 가족들은 이에 따라 기나긴 고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다산은 마흔, 부인 홍 씨는 마흔하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는 열여덟과 열다섯, 막내딸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오솔길은 워낙 유명해서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내판에서 다산초당까지 길지 않은 산길에 삼나무가 길쭉길쭉 시원하게 자라고 있으며, 다산초당까지 오르는 길에는 나무뿌리와 돌부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산길은 다산의 생애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산비탈 중턱에서 다산초당을 만나면, 당당한 기와집 한 채에 동암과 서암이라 불리는 부속 건물도 두 채가 있습니다. 초당은 해남 윤 씨 집안의 산속 정자가 있던 곳으로, 다산이 온 뒤 배움의 열기 가득한 학당이 되었습니다.

 

초당의 이름과는 달리, 기와집으로 남은 것은 1957년 초당을 복원할 때 다산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초당을 방문하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초당 앞 넓은 바위 위에서 솔방울로 차를 달이기도 했습니다. 다산초당의 4 경인 정석(丁石), 약천, 석가산, 다조(차 부뚜막)이 있습니다. 모두 초당 주변에 있으니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그리고 가난

다산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의 가계 내력이 짧지 않았습니다. 과거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여종이 이웃집 호박을 훔쳐 끼니를 해결했으며, 벼슬할 때도 책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산이 언제나 민망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는 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1784년 여름, 다산의 아들 학연이 첫돌 잔치를 열었습니다. 다산 초당 대청에서 오른쪽을 보면 서암이 있습니다. 거기는 다산의 제자들이 머물며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수업이 끝난 후 스승의 말씀을 정리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공부방입니다. 서암은 다산학의 산실로, 다산의 사상과 개혁안이 500권이 넘는 책으로 엮여 있습니다. 다산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의 아버지의 죄를 대신하여 가장이 죄인의 몸이 되어 천리밖 강진으로 귀양을 간 후 남은 가족들의 고생이 더해졌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홍 씨 부인은 가재도구를 처분하고 양잠을 하였으며, 두 아들은 농사를 배웠습니다. 큰 아들 학연은 수확한 마늘을 판매하여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다산은 언제나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2000권이 넘는 책을 두고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서재이자 연구실이 위치한 동암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동암에서 나와 멀리 강진만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 나중에 천일각이 세워져 방문객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동암과 천일각 사이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이 시작됩니다.

 

지기 백련사의 혜장선사

바닷가 벽촌에는 다산과 학문의 '급'이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산의 학문적 고민과 문제를 이해하고 알아준 사람은 흑산도에 유배 중인 둘째 형 정약전 뿐입니다. 둘째 형 외에 다산을 알아준 지기가 이웃 백련사의 혜장선사입니다. 다산은 혜장의 묘비에 '《논어》와 성리의 깊은 뜻을 잘 알아 유학의 대가나 다름없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산은 혜장과 차와 학문을 나누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만덕산 오솔길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백련사 차밭 옆에는 1500그루가 넘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룹니다.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일대는 동백꽃 꿀을 먹으며 꽃가루를 나르는 동박새의 지저귐으로 소란스럽고, 상춘객은 동백나무 그늘을 유유히 걸으며 봄의 향연을 만끽합니다.

 

동백꽃은 피었을 때 어느 꽃보다 정열적이고, 꽃송이가 땅에 떨어지면 그 정열은 애절함으로 변합니다. 이른 봄에는 화사함으로, 늦은 봄에는 애절함으로 보는 이에게 상춘의 만족함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백련사의 동백꽃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절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달 말에 만개하고 낙화하여 꽃송이가 방문객을 위한 레드 카펫을 펼칠 것입니다.

 

새콤달콤한 산책의 마무리

강진에서는 백련사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가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남포를 지나면 강진읍에 들어가 트레킹을 마칩니다. 강진읍 중심까지의 거리는 4.2km입니다. 트레킹을 마치면, 다산이 살았던 곳인 '사우이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많은 추방자들의 고난과 역경이 깃들어 있는 관광지입니다. 복원된 주점과 함께 음식도 즐길 수 있습니다. 사우이게를 걷는 것은 다산의 절망과 고난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백련사 앞에서 날아가는 조류들의 멋진 모습을 감상한 후 하늘을 날아가는 갈매기를 볼 수 있고, 차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강진의 유명하고 맛있는 '바지락 회무침'을 '청자식당'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바지락 회무침은 신선한 바지락, 다양한 야채, 양념을 사용해 직접 개발한 음식입니다. 달콤하고 산미가 어우러진 맛으로 입맛을 만족시켜 줍니다. 쫄깃한 바지락, 바삭한 미나리, 부드러운 호박을 한 입에 넣으면, 굉장한 만족감과 함께 트레킹을 완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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