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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슬픈 가족사 이야기

by 채유니후니 2023. 5. 9.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만수산 자락의 해동사(海東祠)와 외진 산골의 이 사당에서 67년째 안 중근(1879~1910) 의사 추모 제향을 봉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1955년부터 해마다 안 중근 의사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해동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 중근 의사 제사를 지내는 장소입니다.

안중근-사진
안중근

해동사에서 제례

안 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전남 장흥과 전혀 연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산 안씨안 씨 가문의 유림 안 홍천 선생이 안 중근 의사 제사를 지내는 곳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직계는 아니지만 뿌리는 같으니 안 중근 의사를 모시자고 문중을 설득했고, 이 승만 대통령을 찾아가게 됩니다. 죽산 안 씨 유림의 뜻을 접한 이 승만 대통령은 흔쾌히 친필 휘호를 써 주게 됩니다. 그 휘호는 해동명월(海東明月)로 대한민국을 비추는 뜻이었습니다.

안 중근 의사 제례는 죽산 안씨 문중 행사이자 장흥군 추모 행사입니다. 이 승만 대통령과의 일화는 죽산 안 씨 문중 기록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해동사는 만수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동사 문창살 아래는 태극문양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멈춰져 있는 괘종시계

해동사 안 제단에는 안 중근 의사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위패 오른쪽 벽에는 낡은 괘종시계가 걸려있습니다. 바늘이 9시 30분에 멈춰있는데, 이것은 안 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각을 나타냅니다. 2020년은 안 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이었으며, 이를 기념해 대대적인 안 중근 의사 선양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제 안 중근 의사 제례는 죽산 안씨 문중 행사와 함께 장흥군 추모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3월 26일이 새로운 기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안 중근 의사는 “고국에 묻히고 싶다”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러나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슬픈 가족사

그런데 왜 제사도 못 지내고 있었을까요? 여기엔 심란한 가족사가 있습니다. 안 중근 의사는 부인 김 아려(김 마리아·1878~1946) 여사와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1910년 하얼빈 의거 이후 유족은 긴 세월 중국을 떠돌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안 중근 의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1905년 대한제국의 식민지로 전환됨에 따라 일본으로 망명한 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항쟁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안 중근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하얼빈 역에서 사형당했습니다. 그의 사형은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대한독립운동의 열기를 높였습니다. 안 중근 의사는 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대한독립운동의 열정과 희생정신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해동사의 안 중근 의사 제례는 그의 추모와 함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소중한 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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