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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계략 갑오개혁의 중심 김홍집 일본은 19세기 말 조선의 자주 독립을 지키기 위해 갑작스럽게 급진개화파들을 부추기며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조선의 군사적 무력을 강화하고,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실패하고 청군의 개입으로 조선은 결국 위안스카이를 파견한 청나라의 더욱 심한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계략 근대적 개혁의 추진 일본은 이후 청나라와 톈진 조약을 체결하는 등 최소한의 영향력을 남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1884년 이후 10년 동안 청나라가 가장 큰 지분을 갖는 것이었지만 많은 열강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묘한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94년 전봉준이 포문을 열어 동학 농민.. 2023. 6. 22.
을사조약 체결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을사조약, 기유각서, 정미 7 조약, 한일 병합 조약 등을 체결하여 주요 친일파와 매국노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1858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입니다.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 체결, 고종황제 강제 퇴위, 정미 7 조약, 한일합방조약 등을 체결하여 주목받았으며, 그는 광본 전까지 여의도 면적의 7.7배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종의 총애를 받은 이완용 이완용은 1858년 이석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가난한 몰락 양반 가문에서는 어린 시절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살 때 멀리 있는 일가 친척인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 2023. 6. 21.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손병희와 한용운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면서 천도교, 불교, 개신교 등 종교계 인사들이 포함된 민족대표 33인이 전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은 뒤 만세 운동을 벌이는 것이었지만, 계획이 바뀌어 손병희의 집에서 민족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비폭력 운동을 원했던 일부 대표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계획 변경으로 인해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낭독하는 대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요릿집인 태화관에서 낭독했습니다. 계획 변경으로 인해 다소 비판을 받았지만, 민족대표 33인은 종교계 간 화합을 이루어 참여했고 3.1 운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집니다. 이에 대해 민중과 함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계획을 변경했다는 점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대표적인 인물.. 2023. 6. 20.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팔만대장경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이후, 현종의 명령으로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대장경판 간행에 착수했습니다. 이 작업은 부처의 공덕을 빌어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시되었습니다. 이후 약 76년이 지난 후에 고려의 첫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해인사 대장경판 해인사 대장경판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국보 제32호에 등재된 대장경판이다. '팔만사천 법문'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 대장경판은 84,000 가지의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팔만'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많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대장경판은 2015년 최종 집계에 따르면, 총 81,352 장이 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36장의 경판 등이 있지만, 이를 제.. 2023. 6. 19.
백범 김구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으로 유명합니다. 김구 선생은 이곳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1949년 흉탄에 쓰러진 후 삼의사와 함께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효창경기장이 들어서면서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효창공원은 여전히 시민들이 자주 찾는 도심공원으로서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과 함께 백범기념관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원의 원래 이름은 효창원으로,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조성된 후 면적이 축소되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 묘역 이곳은 대한민국 역사상 귀중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입니다. 김구 선생은 일생을 조국 독립을.. 2023. 6. 18.
권율 장군 제사기능을 하던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행주산성 아래에 위치한 조그마한 서원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강학과 제사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서원에 모신 인물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학문과 사상을 논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곳 행주서원은 구한말인 1842년 권율장군을 모신 서원이 없어져 국왕인 헌종의 명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제사 기능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제사 기능이 1970년에 행주산성 내 사당인 충장사로 이전되면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서원입니다. 주변에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행주나루터 인근으로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권율 장군을 모셨던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1842년 현종 8년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 2023. 6. 17.
독립운동가 이상설 초가집 생가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위치한 작은 초가집으로, 멀지 않은 들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상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공부한 이후 관료의 길을 걸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했습니다. 이상설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상설 생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이상설 선생이 태어난 초가집은 1997년 정화사업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숭렬사와 숭모비도 이전되어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져 있었지만, 현재는 복원되.. 2023. 6. 16.
전통 궁시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영집궁시박물관 영집궁시박물관은 전통 궁시문화를 보존하고 선보이는 곳입니다. 다양한 궁시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며, 전통 활과 화살, 쇠뇌, 그리고 활쏘기에 필요한 각종 도구, 외국의 활 등이 있습니다. 전시물 중에는 조선의 비밀 병기인 신기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기전은 한 번에 화살 1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던 조선의 비밀 병기였으며, 조선 초기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여진족으로부터 우리 땅을 되찾는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통활을 만드는 방법 15세기 최첨단 과학 무기였던 신기전은 대포의 일종인 총통이 발전하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영집궁시박물관은 전통 활을 만드는 방법과 특징, 유럽이나 아시아의 활과 다른 점을 눈높이에 맞춰 세세하게 설명해주며, 전시물을 살펴보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2023.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