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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권율 장군 제사기능을 하던 행주서원

by 채유니후니 2023. 6. 17.

행주서원은 행주산성 아래에 위치한 조그마한 서원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강학과 제사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서원에 모신 인물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학문과 사상을 논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곳 행주서원은 구한말인 1842년 권율장군을 모신 서원이 없어져 국왕인 헌종의 명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제사 기능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제사 기능이 1970년에 행주산성 내 사당인 충장사로 이전되면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서원입니다. 주변에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행주나루터 인근으로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행주서원-사진
행주서원

 

권율 장군을 모셨던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1842년 현종 8년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장군을 모신 곳으로, 권율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기공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고, 점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권율장군은 선조15년(1582)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습니다. 선조 32년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3만 병이 왜군과 싸워 2만 4천 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의 전과를 올린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습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 37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습니다. 행주서원은 행주산성 아래 한강과 행주나루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출입구인 솟을대문, 강당, 사당과 숙소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원 앞으로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한강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서원 안에는 행주대첩비가 있었는데 1970년 충장사를 세우면서 옮겼다고 합니다. 기공사라는 사당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건물만 복원해 놓고 있으며, 사당으로서의 기능은 행주산성 내 충장사로 옮겼습니다. 행주서원의 강당은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넓은 마루를 두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강 경치를 감상하거나 공부하기에 좋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서원의 규모가 큰 경우는 경치를 감상하는 누마루와 강당을 따로 두는데, 행주서원 강당은 2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강학기능이 크게 중시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행주서원 유생들의 숙소는 보통 동.서재를 두고 있으나, 행주서원은 서재만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충장사

행주산성 근처의 마을에 있던 행주서원 사당에서 기능을 이전한 충장사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70년대 성역화 사업 때 만들어진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당으로, 전통적인 형태의 사당은 아니며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건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충장사는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이끈 권율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충장사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달린 현판과, 장우성 화백이 그린 권율장군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매년 3월 14일에는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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