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여행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팔만대장경

by 채유니후니 2023. 6. 19.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이후, 현종의 명령으로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대장경판 간행에 착수했습니다. 이 작업은 부처의 공덕을 빌어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시되었습니다. 이후 약 76년이 지난 후에 고려의 첫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대장경판-사진
대장경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해인사 대장경판

해인사 대장경판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국보 제32호에 등재된 대장경판이다. '팔만사천 법문'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 대장경판은 84,000 가지의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팔만'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많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대장경판은 2015년 최종 집계에 따르면, 총 81,352 장이 제작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36장의 경판 등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숫자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해인사 대장경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해는 1237년(고종 24)이었습니다. 이 대장경판 제작은 고려시대 몽골의 3차 침입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황룡사 9층목탑 등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상당수 소실될 정도로 몽골군에 의해 약탈과 방화가 매우 심했습니다. 최우의 무신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던 조정에서는 이를 버텨내고 1232년 대부분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복구하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고려 조정은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대장경판 제작을 위해 이규보로 하여금 그 이유와 염원을 담은 기고문을 짓도록 한 뒤 간행에 돌입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대장경판 제작은 16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간행 기록에 따르면 1237년에 시작해 1248년에 끝내었다고 되어 있어 모순됩니다. 그러나, 정식 작업 전후의 준비 기간이나 추가 간행을 합친 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대장경판 구성

팔만대장경은 가로 69cm, 세로 24cm, 폭 3cm 정도의 규격에 맞춰진 경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판들은 산벚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옻칠이 행해졌고 귀퉁이에 연도와 간행 기록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본문인 경문은 23행 14자에 맞춰서 새겨졌습니다. 오탈자가 5천만여 자 중 겨우 158자밖에 되지 않아 대단한 고찰을 보여줍니다. 서체는 일정하고 변동이 없는데, 이는 대장경 제작을 담당한 이들이 같은 글꼴을 판각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음을 반증합니다. 제작은 고려 조정에서 지시한 국가적 사업이었습니다. 보관을 위한 건물은 15세기부터 합천 해인사에 짓기 시작했으며, 1457년 즈음으로 추정됩니다.

 

대장경판의 관리와 위기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대장경판 중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것으로, 고려의 판각 기술과 불교문화를 잘 보여주는 문화재입니다. 대장경판은 총 81,258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장경판 중 하나입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13세기에 만들어졌으며, 현재까지도 훼손 없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일부 글자가 마모된 흔적이 있긴 하지만, 해인사의 관리로 13세기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 상태가 양호합니다. 해인사의 스님들과 관계자들은 꾸준히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쌓이는 먼지를 청소하며,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화재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 대장경판이 아무런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조선 세종 시절 일본의 요청으로 반출될 뻔 한 적이 있었고, 조선시대 동안 해인사에 7차례 정도의 화재가 났었습니다. 다행히 장경판전에 불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대장경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한국전쟁 도중에는 해인사에 숨은 북한군을 소탕하기 위해 공군에게 폭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공군 대령이었던 김영환 군인이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무릅쓰고 대장경판을 보존하기 위해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장경판전에 보관된 소중한 문화유산이 불에 타버리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숱한 위기를 거쳐온 해인사 대장경판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또한, 해인사 대장경판은 거의 유실된 송나라와 거란의 장경판전을 많이 담고 있는 점, 그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온전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인사 대장경판은 국보 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문화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