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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고려 시대 목화를 붓통에 넣어 가져온 문익점

by 채유니후니 2023. 5. 27.

문익점은 목화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가져온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문익점은 고려 공민왕 시절 삼우당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왔고,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하였습니다. 문익점은 문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록, 순유박사 등을 지내고, 다시 전의주부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 일파에 의하여 추진된 전제개혁에 반대했다가 조준의 탄핵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후, 강성군으로 추봉 되었으며 세조 때에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문익점-기념비-사진
문익점 기념비

 

붓통과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 면작기념비 

1935년에는 문익점과 문승로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기 위해 금성산 고분군 입구에 기념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이 기념비 뒤에는 작은 목화밭이 있으며, 문익점의 손자인 문승로가 의성 땅에 목화씨를 파종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목화는 고려 공민왕 시절 삼우당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귀국할 때 금주성에서 목면종자를 필관에 넣어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태종 시절 손자인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의성군의 지세가 금주성과 흡사하여 제오리에 목화를 재배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목화로 만든 천연 섬유 무명

무명은 조선시대 여자들이 했던 집안일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 중 하나였습니다. 길쌈은 국가적으로도 상당히 중요시 여겨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은 길쌈에 참여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명베는 가족들이 입었던 의복의 재료로도 중요했지만,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 물자의 거래를 위한 화폐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했던 품목으로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서구의 면직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도 그 역할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까지도 농촌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무명길쌈이 존속했으며, 현재는 시골 출신 어른들이 베틀을 보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와서 재배함으로써 시작된 목화는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 섬유로, 목화 솜을 씨아에 넣어 돌려서 씨를 빼내고 물레에 날아 실을 뽑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뽑아낸 실은 풀을 먹여 잿불에 말리고, 도토마리에 감아 틀에 걸어서 짜낸 무명은 잿물에 삶고 헹구어 햇빛에 말린 다음 옷감으로 사용됩니다. 목화에서 나오는 솜은 실, 무명천, 이불솜, 옷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특히 추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아주 유용한 식물입니다. 요즘은 목화의 열매로 기름을 짜서 바이오 에너지에 쓰이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의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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