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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유적 고인돌 지석묘

by 채유니후니 2023. 5. 27.

지석묘는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입니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북방식과 남방식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북방식은 땅 위에 있는 바둑판 모양의 방에 뚜껑돌을 덮는 것이고, 남방식은 뚜껑돌 밑에 받침돌을 고이는 방식과 판석만을 놓고 땅 밑에 무덤 방을 만드는 개석식이 있습니다.

 

이 유적은 청산면 읍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동쪽 도로변에 '골기미', '독배기'로 불리는 곳에 하마비와 함께 있습니다. 이 지석묘는 20여 년 전 도로 공사로 훼손되어 현재는 3기만이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호는 4개의 지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2호도 마찬가지입니다. 3호는 북쪽 판석이 없어졌습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지석묘 부근에서 마제석검 등을 비롯한 석기가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지석묘-사진
지석묘

북방식 남방식 지석묘

규모 : 171㎡

지석묘는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입니다. 북방식과 남방식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남방식으로 무덤 위에 흙을 올리고 잔디를 입히는 대신 봉분을 짓지 않고 큰 돌덩이로 뚜껑을 덮는 묘제입니다. 이 지석묘는 북부와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반석이 덩어리로 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서 나는 암석의 탓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주로 해안 지방에 위치하는 지석묘는 남방계 지석묘군으로 분류됩니다. 1960년대 중반에 이곳에서는 석검이 출토되었습니다.

앞을 지날 땐 말에서 내려야하는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져 있던 비로,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글을 비에 새겨 두었습니다. 하마비는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비의 주변에는 10 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습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어진 하마비는 앞면에는 보살상을 새겨놓았으며, '하마비'라는 글자는 시멘트로 만든 하단에 새겨두었습니다.

 

불상의 머리 위에 보관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보살상으로 추정되며, 고려 말 또는 조선 초반에 세워졌다고 추정됩니다. 이 하마비는 주변에 10여 기(基)의 고인돌과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원래는 조창현씨 논에 있었으나 1962년 3월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조선시대의 종묘와 대궐 문 앞에는 여러 개의 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 중에서도 하마비는 다른 비와는 차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마비는 향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면에는 음각으로 조식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 위에 보관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보살상으로 추정됩니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원래는 이 입석에 새겨진 불상을 '하마비'로 이용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마비는 귀족층의 종교적인 믿음과 더불어 일반인들의 민간신앙에서도 큰 역할을 했던 비입니다. 그래서 이 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글을 보고 경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하마비가 이전에 있던 조창현 씨 논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는 그 시대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및 전승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는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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