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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조선 후기 성리학자 송시열 유적 수암사

by 채유니후니 2023. 5. 30.

조선 후기에 활동한 성리학자 송시열은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하며, 강상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 국가·사회 기강을 철저히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주자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본관을 은진이라 하고, 자는 영보, 호는 우암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지조윤강(至道諺綱)』, 『운사(運事)』 등이 있습니다.

황강-영당-수암사-사진
황강 영당 및 수암사

황강 영당 및 수암사

조선 주자학의 대가인 송시열이 유서에 따라 만동비와 대보단을 세운 곳으로, 송시열과 그의 제자인 권상하, 한원진, 윤봉구, 권욱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과 수암 권상하를 모시고 있는 사당입니다. 이 건물은 영조 2년(1726)에 황강서원으로 건립되었으며,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황강영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습니다. 황강영당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이며, 수암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괴산 송시열 유적

청천 우암 송시열 유적은 화양동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터와 만동묘터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애각사적,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됩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써 유지가 잘 남아 있습니다.

 

암서재는 송시열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은 효종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효종의 기일마다 이곳에 올라 통곡하였다고 전합니다.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괴산 문화관광 홈페이지

 

괴산군청 문화관광

괴산군청 문화관광

www.goesan.go.kr

충북나드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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