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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고려의 멸망을 초래한 권문세족 기철

by 채유니후니 2023. 6. 29.

여몽전쟁 이후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하면서 원 간섭기가 시작되면서 고려는 문화적, 사회적으로는 예속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자주권을 잃은 뒤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원나라에 빌붙은 부원배나 권문세족이 새로 등장하여 고려의 권력을 빼앗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권문세족은 부패한 사찰들과 공모하여 백성들에게서 토지와 재산을 빼앗았으며, 고리대금업까지 강탈하여 그들을 자신들의 노비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홍건적, 남쪽에서는 왜구가 공격해 오면서 고려는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고려 충혜왕부터 공민왕까지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고려의 멸망을 초래한 인물로 가장 대표적인 권문세족인 기철이 나타납니다.

경천사지십층석탑-사진
경천사지십층석탑-사진

누이 기황후의 영향력으로 안하무인이 된 기철

기철은 고려시대의 무신인 기자오의 아들로 충렬왕 시대에 활약했습니다. 기자오는 충렬왕을 지키고 적군을 처치하는 등 충신으로서 공을 세우며, 고려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문은 꽤나 명성이 높아 음서로 관직에 오른 자손들이 많았으며, 이 가운데 기철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철의 삶은 기자오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기철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건은 기철의 누이인 기황후가 원나라의 황후가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기황후는 본래 공녀로 선발되어 원나라 황실의 시녀로 일하다가, 원 혜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여 제2황후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권력 암투 끝에 제1황후가 되었고, 무능한 남편과 아들을 틀어쥐고 원나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려 출신의 여인이 원나라의 권력자가 되는 일은 고려에게 이득이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황후의 행동으로 인해 고려는 각종 부정부패를 일으켜 원나라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오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고려는 고객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었으며, 고려가 원나라에 보내는 공물의 양 역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철은 원나라 조정에 가담하여 고려에 큰 피해를 입히며, 최고 실권자로서 고려 전체를 흔들게 되었습니다.

 

기철은 기황후의 영향력을 받아 안하무인한 행동을 보이면서 고려 출신의 신하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젊은 왕 공민왕이 즉위하면서 기철의 영향력은 약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기철이 쌓아온 영향력과 권력은 이미 고려 전체의 정치적 상황을 크게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고려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크게 바꿔놓았으며, 기철의 삶도 기자오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고려시대의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공민왕의 권문세족 숙청

공민왕은 원 간섭기의 다른 왕들과는 달리 썩어 빠진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권문세족을 숙청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권문세족의 대표적인 인물인 기철에게 공격을 돌리는 등 강력한 반원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에 기철 일당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끌어내리려는 찰나, 공민왕은 선제적인 공격을 펼쳤습니다.

 

기철 일당이 체포되어 처형당하자 권문세족 세력은 한순간에 몰락했습니다. 이후 기황후가 고려의 새 왕으로 덕흥군을 책봉하게 됐지만, 그녀의 공격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권문세족이 제거되면서 고려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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