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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나주 역사 여행 완사천과 회진성

by 채유니후니 2023. 5. 27.

나주시청 앞 300m 지점 국도 13호선 주변에 있는 완사천은 작은 옹달샘이었으나 택지 조성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물 긷는 처녀와 나그네의 전설이 있는 곳으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나주의 향리들이 기록한 관청일기인 "금성일기"에는 세종 11년(1429) 정월 이안관 전판서 운관사 장득수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모신 후 2월 6일 서울로 떠난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이곳 혜종사가 훼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완사천-사진
완사천

태조 왕건과 완사천

완사천은 전통적으로 고려 태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 이곳 나주를 몇 차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왕건은 이곳에서 당시 17세의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고, 제2대 혜종을 낳았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이곳 완사천 일대에는 흥룡사와 혜종사란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흥룡사는 금강진(현 완사천 일대)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을 때 장화왕후의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터로, 혜종을 낳은 인연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혜종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중기까지 혜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셔온 곳으로, 이곳 완사천 일대의 흥룡사와 함께 고려 태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이곳을 '흥룡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나주의 향리들이 기록한 관청일기인 "금성일기"에는 세종 11년(1429) 정월 이안관 전판서 운관사 장득수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모신 후 2월 6일 서울로 떠난 기록이 있습니다.

백제 지역의 가장 큰 규모의 토성, 회진성

회진성은 백제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토성입니다. 서울의 몽촌토성보다 둘레가 100m 더 길며, 동, 서, 북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만이 영산강의 본류를 향해 개방된 영산강 유역의 천혜의 요충지입니다. 성벽은 판축이라 하여 한채 한채 흙을 넣고 다져 쌓았습니다.

 

성의 둘레 길이는 2.4km이며, 그 아랫부분은 폭이 14m입니다. 산 능선의 평탄한 곳을 이용하여 4개의 문을 만들었던 흔적과, 남쪽의 낮은 계곡에 수구문이 있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199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회진성은 인근 복암리고분군과 병행하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추정되었습니다.

 

또한, 통일신라 말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곳은 백제에 속한 지역세력이 아닌, 독립된 세력의 토착 생활공간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백제의 축성기법을 알아볼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며, 그 뒤의 수축 양상도 남아 있어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나주문화관광 홈페이지

 

나주시청

 

www.na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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