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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2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이끈 이원익의 대동법 1598년, 두 차례나 이어진 일본의 침입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조선의 승리로 인해 끝났지만, 조선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이 쓸고 간 국토가 황폐화되어 백성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다다랐고, 소중한 문화 유산들이 불탔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해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섭취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임진왜란이 준 타격은 상당했습니다. 전쟁 당사자인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내전 끝에 에도 막부가 새로이 권력을 차지했고, 조선에서 잡아 간 백성들과 유물들을 이용해 문화 수준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명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느라 힘을 써 결국 쇠락 끝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만주에서 여진족이 급부.. 2023. 5. 16.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 동래 읍성 동래읍성지는 충렬사 뒷산의 동장대에서부터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에 있는 서장대까지의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일부 평탄지를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읍성입니다. 동래읍성의 중요성 이 읍성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공을 위시한 민,관,군이 혼연일체가되어 왜군에 맞선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장렬한 전투의 최대 격전지였습니다. 이후 읍성은 방치되었지만, 동래부사 정언섭이 1731년(영조 7)에 동래읍성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성을 재건축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습니다. 이 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동래읍성은 .. 2023. 5. 13.